우상 숭배의 결과: 절망과 고통_열왕기상 18:16-29
- HKPC
- May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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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지금 이스라엘에 닥친 기근은 아합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죄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에 따른 비참한 열매를 바르게 보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절망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죄의 비참함을 일깨우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를 회개와 회복으로 이끌어 갑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에 엘리야는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괴롭게 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합과 그의 세력은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바알들을 따랐습니다(16〜18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아합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죄에 동조도, 지지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거부하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회개를 촉구하여 회복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 번째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모아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합은 바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읍니다(19〜20절). 거짓 종교의 특징은 수와 규모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한 명과 대결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은 비교할 수 없는 큰 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수와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위대한 승리를 이루십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선택하라”(21절)고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질문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셔서 복을 주셨으며 여기까지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머뭇거립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엘리야의 책망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21절).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택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엘리야의 두 번째 제안은 각각 송아지를 놓고 엘리야는 하나님을,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을 불러, 불을 내리는 쪽이 진짜 신임을 증명하자는 것이었습니다(23〜24절).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나섭니다(25절). 그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을 외쳐 불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제단 주위를 뛰놀기 시작합니다(26절). 히브리어 본문에서 ‘뛰놀다’라는 단어는 ‘머뭇거리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우상 숭배로는 바르게 설 수도, 걸을 수도 없습니다. 거짓이고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바알에게서 응답이 없자 이방 선지자들은 규례를 따라 자기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합니다(28절). 그들의 규례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고통을 줄 뿐입니다. 아무리 미친 듯이 떠들고 뛰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3년이 넘는 기간 온 나라가 기근에 허덕였습니다.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절망과 상처와 고통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우상을 좇습니다. 우상은 우리에게 복을 주지 못합니다. 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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