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을 담는 새 부대_마태복음 9:14-26
- H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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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조선 시대에 ‘곡비’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곡비는 말 그대로 ‘곡을 대신 해 주는 사람’ 곧 장례가 났을 때 대신 울어 주는 사람입니다. 효를 중요하게 여겼던 조선 시대에는 자식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 의례가 많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슬퍼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자녀들은 3년 동안 부모님을 추모해야 했는데, 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상주의 건강을 보호하려는 선한 취지에서 곡비를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곡비는 부모님을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곡비의 울음은 번지르르한 형식으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의 본질은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신앙과 삶에는 원래의 선한 취지는 사라지고 율법을 지키는 형식만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율법주의자들을 새로운 복음의 생명력을 담을 수 없는 낡은 부대라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우선, 예수님은 낡은 형식과 새로운 복음의 충돌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지 질문했을 때(14절)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15절). 예수님은 당신을 ‘신랑’으로 비유하며 구원의 기쁨이 시작된 메시아 시대를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려야 할 때인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길 날”을 언급하시며 장차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고하셨고, 그때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새 천 조각과 새 포도주 비유는 새로운 시대의 본질을 가르쳐 줍니다. 새 천(복음)은 낡은 옷(옛 형식/율법)과 공존할 수 없고, 새 포도주(생명력 있는 복음)는 낡은 가죽 부대(율법주의, 형식주의)에 담을 수 없습니다(16〜17절). 여기서 가죽 부대는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용기인데, 낡아 신축성이 없는 부대는 새 술에서 생겨나는 발효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버립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대교의 전통에 담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며, 새 언약이야말로 최종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형식적·종교적 관습이 아닌, 우리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다음으로, 복음의 능력은 믿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예수님이 한 관리의 딸을 살리러 가시는 도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율법적으로 부정한 상태가 되어 공동체로부터 단절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옷 가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라는 절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자 예수님의 치유와 생명이 그녀에게 흘러갔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절). 이 구원은 육체의 치유를 넘어 그녀의 전인적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죽은 소녀도 살리셨습니다(25절). 죽음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기쁨의 잔치가 시작된 구원의 시대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신앙생활을 형식적인 의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능력과 기쁨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까? 오래된 습관과 형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십시오. 풀리지 않는 문제나 깊은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 그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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