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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열매를 맺는 예배_고린도전서 14:13-25

  •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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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1945년 7월, 연합국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보냈는데, 일본의 스즈키 간타로 총리는 ‘잠시 입장을 유보한다’는 뜻으로 ‘모쿠사츠’라고 답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완전히 무시한다’라는 의미로 전달되었습니다. 진심이 무엇이었든,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파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영으로, 또 마음으로 기도하라(13〜19절).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에게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13절).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나의 영은 유익할지 몰라도 마음은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누스’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지각’, ‘이해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예배와 기도가 단순히 영적인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뜨거움은 반드시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이해되는 말이 공동체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라틴어 성경만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들이 “쟁기질하는 소년도 성경을 읽게 하겠다”라고 말하며 목숨을 걸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은 잠자던 유럽의 영성을 깨우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해되는 말씀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깨우십니다.

     

  지혜에 장성한 어른이 되어라(20〜22절).

  바울은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도전합니다(20절). 악한 일에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별에 있어서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은사 자체에 몰두하는 것은 미숙한 신앙입니다. 진정한 성숙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사야 28장 말씀을 인용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언어를 듣게 하셨습니다. 이는 심판의 표적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진 것입니다. 예배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가득 차면 하나님을 만나기보다 혼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게 하는 예배(23~25절).

  만약 불신자나 초신자가 예배당에 들어왔는데, 모두가 방언만 하고 있다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23절). 이는 복음의 문을 막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은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진리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비춥니다. 숨겨진 죄가 드러나고 양심이 깨어납니다(24절). 그때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는구나’(25절).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경험에만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말과 예배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발견하길 원하십니다. 윌리엄 틴들이 성경을 번역하여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었듯, 우리의 말도 누군가의 영혼을 깨우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복음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사랑을 실천할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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