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마음에 새기라_베드로후서 2:12-22
- HKPC
- Jun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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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의 죄와 악영향을 고발하고, 잘못된 자유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밝혀, 헛된 믿음과 정신 나간 향락주의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믿음으로 반응할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헛된 욕망과 세상의 풍조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하늘의 권면을 받습니다.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12~16절)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이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강렬한 어조로 공격합니다(12절). 그들이 새로운 사상과 지식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들은 무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 비이성적 존재이며(12절), 그저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짐승과 같기 때문입니다(13절). 또한 그들을 점과 흠이라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얼마나 대조되는 존재인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3:14). 합리주의, 과학주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변명으로 가득 찬 오늘날의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이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짐승처럼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12절). 베드로는 여기에서 발람 선지자를 소환합니다(15〜16절). 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여 발람의 미친 여정을 저지시킨 사건을 언급하며, 불의의 값(13절)을 위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와 간음으로 이끌었던 발람을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책망하신 것처럼, 미친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이 멈추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미혹하고 욕망을 따르라고 유혹하는 거짓된 입을 하나님은 그냥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잘못된 가르침을 잘 분별하고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잘못된 자유에 대한 경고(17~22절)
베드로 사도는 이어서 거짓 선생들이 성도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속임수와 거짓을 말하는데, 물 없는 샘과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는 실체가 없는 허상을 의미합니다. 물을 기대하고 찾아갔으나 물이 없는 가짜 샘처럼, 세상을 뒤덮은 것처럼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흩어져 사라지는 안개처럼,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하라고 유혹하며(18절), 자신들의 길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이 멸망의 종이 되어 억압받고 있는 아이러니를 고발합니다(19절). 죄에게 져 죄의 종이 된 자는 영원히 죄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죗값을 지불하시고 구속하신 성도는 죄를 거절함으로써 참자유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 왜 얽매임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가 반문하며, 차라리 그리스도의 도를 알지 못하는 편이 나으리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20〜21절).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속담을 인용해 죄에 매였던 옛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호소합니다(22절).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 목마름을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로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렘 2:13).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일견 논리적으로 보이고 통찰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헛된 욕망에 대한 비굴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리석은 해석과 거짓 통찰이 성도의 믿음을 끌어내리려 교회 안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죄로부터 해방된 성도의 신분을 기억하며 헛된 욕망과 죄를 거절하는 참자유인으로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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