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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늘 선하시다_역대상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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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암몬은 사울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악연이 깊은 나라였지만, 암몬 왕 나하스는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 합니다. 그런데 선을 갚으려던 손길이 뜻밖에도 한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됩니다.

     

  오해받은 다윗의 선의.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사절단을 보내 조문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하스가 베푼 호의를 잊지 않고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그러나 암몬의 방백들은 하눈에게 다윗의 조문단이 암몬 자손을 정탐하고 침략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충동질했고, 하눈은 그들의 말을 믿고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수염을 깎고 옷을 엉덩이 중간까지 잘라 돌려보냈습니다. 이 어리석은 도발의 결과가 6절에 나옵니다.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밉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악취를 풍기다’, ‘썩은 냄새가 나다’라는 뜻입니다. 암몬은 스스로 다윗에게 악취가 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두려웠던 하눈은 은 일천 달란트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아람의 병거와 마병을 고용합니다(6~7절). 다윗이 베푼 호의가 어떻게 전쟁의 원인으로 뒤바뀌었을까요? 본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영적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불신은 주님의 선하심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암몬의 비극은 하눈이 다윗의 선의를 믿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불신이 두려움을 낳았고, 두려움은 적대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인생에 갑자기 험한 파도가 밀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의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그랬습니다.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그 은혜의 손길 앞에서도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신 1:27)라며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그 원망의 뿌리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신 1:32). 이처럼 불신에 사로잡힌 마음은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고, 사랑의 손길을 두려움으로 읽어 버립니다.

     

  말씀 위에 설 때 주님의 선하심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황이나 감정이 아니라 말씀 위에서야 합니다. 잠언 16:9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내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 비로소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집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다윗의 호의가 오해받았듯,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배척당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끝까지 증명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처지와 상황과 감정에 상관없이 주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올바로 분별하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손길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선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불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제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은 선하십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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