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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왕이 된 인생_로마서 6:1-7

  • HKPC
  • Sep 14
  • 3 min read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제는 복음으로 살아야죠.”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고백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파헤쳐 보면 서로 다른 의미로 그런 말을 주고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참 놀라운 소식입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시고, 그 어떤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 은혜의 복음을 오해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죄를 한두 번쯤 지어도 괜찮겠지. 은혜 아래 있다면 이제 죄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바울은 그런 생각에 대해 단호하게 묻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1절).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단언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2절). 이 표현은 바울 서신에서 반복되는 가장 강력한 부정입니다. “절대 그럴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은혜를 빌미로 죄를 합리화하는 삶’이 아닙니다. 죄의 권세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권세의 영역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세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3절). 여기서 ‘세례를 받다’라는 표현은 ‘뛰어들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 의식으로서의 세례가 아니라, 회심의 순간에 신자가 그리스도의 권세의 영역으로 뛰어들어 가는 것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연합을 통해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신자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2절)라는 말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르는 삶을 내려놓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말씀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우리 ‘옛사람’도 죽었습니다(6절). 죄를 즐기던 본성, 자기중심적인 태도, 세상의 쾌락을 따르던 옛 자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죄의 몸이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의 몸’은 육체가 아니라 죄의 지배 아래 있었던 자아를 가리킵니다.

  이제 죄는 우리 삶을 주관하지 못합니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7절).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는 말은 ‘죄가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다’는 법적 선언입니다.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죄가 우리를 좌지우지하려 할 때 우리는 “나는 이미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권세입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왜 그 죄를 여전히 반복하지?” “나는 왜 여전히 쉽게 화를 내고, 낙심하지?”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우리는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죄가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질 때마다 낙심하기보다는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당신은 죄에 대해 죽었고, 이제는 새 생명 안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제 은혜의 통치를 받는다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단지 천국행 티켓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 능력입니다. 이제 죄는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죄는 왕 노릇 할 수 없고, 은혜가 우리 삶을 다스립니다. 오늘 하루도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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