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받는 크리스천_디모데후서 2:14-26
- HKPC
- Nov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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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펜싱은 중세 시대부터 시행되어 온 스포츠입니다. 전자 장비가 없던 시절, 판정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누가 찔렸는지’는 찔린 사람만이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펜싱에서 공격이 성공하면 “투셰!”라는 외침이 들리는데, 이는 “찔렀다”가 아니라 “찔렸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공격당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 외침은, 실점한 사람이 손을 들어 패배를 고백해야 점수가 부여되는 경기 규칙에서 비롯됩니다. 이처럼 펜싱은 단순한 경기 이상입니다. 찔린 순간 “투셰”를 외치며 자신의 허점을 돌아볼 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됩니다. 신앙도 이와 닮았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고백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그 침묵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지 못하는 인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투셰”를 외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일꾼이 어떤 사람인지를 세 가지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사람입니다(15절).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라는 헬라어는 ‘길을 곧게 내다’ 혹은 ‘밭을 똑바로 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말씀을 왜곡하거나 편향되게 전하지 말고 곧고 바르게 전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해설할 때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반대로 18절에 등장하는 거짓 교사들은 표적을 빗나간 화살처럼 진리에서 벗어나, 듣는 이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악성 종양(17절) 같은 자들입니다. 오늘날에도 말씀보다 말장난, 철학, 과학, 인문학 이론으로 가득한 가르침은 교회를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바른 말씀을 똑바로 전함으로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이들입니다.
둘째, 귀하게 쓰이는 그릇은 자신을 정결케 하는 사람입니다(20~22절). 바울은 교회를 ‘큰 집’에, 성도들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금과 은 같은 귀한 그릇도 있고, 나무나 질그릇 같은 천한 그릇도 있습니다. 차이는 단 하나, ‘깨끗함’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정결함은 단지 외적 경건이 아니라, 거짓 가르침과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진리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내면의 상태입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에 들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바울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22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성적 욕망만이 아니라, 이기심, 교만, 다툼의 본성 등 모든 미성숙한 욕망을 포함합니다. 동시에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권합니다. 도망쳐야 할 것으로부터는 확실히 도망치고, 따라야 할 것은 확실히 붙드는 태도가 ‘귀한 그릇’의 삶입니다.
셋째, 주의 종은 다투지 않고 온유한 태도로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24〜26절).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 진리를 가르칠 때 다투거나 공격적으로 대하지 말고, 온유함과 인내로 사람을 대하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그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사역은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영혼의 회복을 위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그릇입니까?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삶을 정결히 하며, 온유한 태도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귀히 쓰는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펜싱장에서 “투셰!”를 외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 앞에서 찔렸다면 회피하지 말고 정직하게 반응하십시오. 그 고백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일꾼, 자신을 정결히 하는 그릇, 온유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주의 종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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