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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이 이끄는 인생_디모데후서 1:9-18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섞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잘 알려진 릭 워렌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라는 생명체를 만들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계획하셨다. 우리 신체의 가장 작은 부분을 선택하셨고 우리의 재능과 독특한 성격까지도 하나님의 결정대로 만드셨다.” 반면 현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목적 없이, 의미 없이, 허무를 끌어안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보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뜻과 은혜’를 따라 구원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셨습니다(9절). 이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사명에 따라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획되었으며,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확증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영생을 드러내셨습니다(10절).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11~12절).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알았고, 그 부르심이 그를 감옥에 이르게 했을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확신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 역시 복음을 맡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면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3〜14절). 여기서 ‘바른 말’이란 문자적으로 ‘건강한/건전한’ 말로서, 복음서에서는 이 단어가 주로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이들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이전에는 병들고 불완전했던 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온전하게 되었듯, 바른 말씀이 선포될 때도 영혼과 삶에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본받아 지키고” 중 ‘본받다’라는 표현을 영어 성경 NEB는 ‘개요’(outline)로 번역하는데, 거스리(Guthrie)라는 학자는 이를 “건축가가 상세한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리는 개략적인 스케치”라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는 디모데가 권면 받은 대로, 단순히 가르침을 반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복음의 본을 정확히 따르며, 성령의 도우심 속에 그 복음을 신실하게 지켜 내야 합니다.

  사명의 길에서 동역자의 사랑과 충성은, 주님이 주신 일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극명한 대조가 등장합니다. 바울을 버린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포함한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15절)과 감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와 부끄러워하지 않고 섬긴 오네시보로(16~18절)가 그 경우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외로움과 위협, 심지어 동료의 배신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지 않는 충성된 자만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음의 사명을 받은 우리의 삶은 ‘던져진 인생’이 아니라 ‘보내진 인생’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며, 지금 우리가 선 자리도 사명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쉽게 부르심을 잊고 세상의 유혹과 평가에 흔들립니다. 다시 한 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지키며, 누군가의 믿음을 북돋는 동역자가 되겠다고 결단합시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복음을 따라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채우고 누군가의 믿음을 붙드는 동역자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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