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사랑_에스겔 23:1-21
- HKPC
- Aug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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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5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가 연애하는 자 곧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준수한 청년이요 말 타는 자들이라
7 그가 앗수르 사람들 가운데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혔으며
8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으며 그의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 바 되었더니 그가 그 때부터 행음함을 마지아니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의 정든 자 곧 그가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넘겼더니
10 그들이 그의 하체를 드러내고 그의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여인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판을 행함이니라
11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의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12 그가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청년이었느니라
13 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14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색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15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그의 용모는 다 준수한 자 곧 그의 고향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16 그가 보고 곧 사랑하게 되어 사절을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
17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행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18 그가 이같이 그의 음행을 나타내며 그가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의 형을 싫어한 것 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19 그가 그의 음행을 더하여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행음하던 때를 생각하고
20 그의 하체는 나귀 같고 그의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사랑하였도다
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져졌던 것을 아직도 생각하도다
북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과 아세라 등 이방의 우상까지 숭배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는 그래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한 왕들이 나타나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등, 선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타락이 북 왕국 이스라엘보다 더하다고 고발하십니다.
사마리아의 배신(1~10절)
하나님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오홀라’(‘그녀의 장막’이라는 뜻)와 ‘오홀리바’(‘내 장막은 그녀에게 있다’라는 뜻)라는 자매에 비유하며 그들의 실체를 고발하십니다(2, 4절). ‘장막’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이름을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남편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북 왕국과 남 왕국을 모두 마치 당신의 아내와 같은 친밀한 언약 대상으로 여겨 오셨지만, 그들은 이방의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어렸을 때, 곧 애굽에 있을 때부터 행음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3절). 오홀라(사마리아)가 하나님께 속했을 때, 즉 멸망하기 전에는 앗수르의 고관과 감독, 준수한 청년, 말 타는 자들을 사랑했는데, 이는 그 왕권과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힘과 권력에 매료되어 하나님을 배신하고 영적 간음을 저질렀는데, 사실 애굽의 우상을 섬긴 전력도 있었기에 이렇게 영적 타락에 빠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7〜8절).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그렇게 섬겼던 앗수르에게 능욕을 당하여 멸망하고 말았습니다(9〜10절).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에 의해 능욕당하고 멸망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의 방법으로 성장하려 하거나, 성도들이 사회적 지위나 재산으로 자부심을 표현하며 인정받으려 할 때, 우리도 오홀라처럼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더한 배신(11~21절)
하나님은 오홀리바(예루살렘)의 행위를 오홀라보다 더 심각한 타락으로 묘사하십니다. 오홀라의 잘못을 보고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하게 앗수르를 음란하게 섬겼다는 것입니다(11〜13절). 오홀리바는 앗수르뿐 아니라 갈대아(바벨론)에게도 마음을 빼앗겼는데, 갈대아 남자의 그림을 보고 정욕을 품어 그들을 불러들였습니다(14〜16절). 이는 아하스 치하의 유다가 친앗수르 정책을 펼치다가 히스기야 때 바벨론을 끌어들인 일을 반영합니다(왕하 20:12〜19). 유다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바벨론을 의지했습니다. 유다 왕의 눈에는 효과적인 정책으로 보였으나 결국은 나라를 파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17〜18절). 유다는 바벨론에게 신실하지 못했고, 다시 애굽과 음행에 빠져 바벨론과 유다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19〜21절). 이는 여호야김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고 친애굽 정책을 펼친 것을 반영합니다. 유다는 애굽을 믿고 바벨론을 대적했지만, 애굽은 바벨론의 적수가 되지 않았고,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왕들이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변 나라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의뢰했기 때문에 임한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기보다 세상적인 술수를 의지하다 보면 이렇듯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됩니다.
본문은 북 왕국과 남 왕국이 하나님께 얼마나 심각하게 반역했는지를 노골적인 표현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내에게 배신당한 신랑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보시며, 여전히 관계 회복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과 충성됨을 회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을 추구하고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복된 길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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