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개혁의 주체인가_열왕기하 12:1-8
- HKPC
- Jul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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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는 사회 개혁, 종교개혁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요아스 때 성전을 수리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와 신앙을 바로 잡으려 할 때 그 개혁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뿌리 깊은 죄악(1~3절)
열왕기 저자는 왕이 즉위한 시간과 장소, 통치 기간을 밝히며 요아스를 소개합니다(1절; 11:1〜3). 요아스의 통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용두사미(龍頭蛇尾)라 하겠습니다. 요아스는 7세에 즉위해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에는 정직하게 행했으나, 여호야다의 사후에 심각하게 부패했습니다(2절; 대하 24:15〜21). 그에게 솔로몬 때부터 깊이 뿌리박힌 산당 종교를 없앨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3절). 북 이스라엘의 예후가 아합의 집안을 쓸어버렸음에도 여로보암부터 내려온 금송아지 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듯(10:29) 아합의 딸 아달랴를 처단한 유다의 다윗 왕조도 산당 종교를 제거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죄악의 뿌리는 너무나도 깊고 단단하게 박혀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열심을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어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절대 죄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체 개혁은 실패한다(4~6절)
갓난아기 때부터 성전 안에 숨어 살았던 요아스로서는 7세에 즉위하기 전까지 성전은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달랴에 의해 약탈당한 성전을 보수하려 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4〜5절; 대하 24:7). 그러나 요아스 왕 23년에 이르도록 그 명령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습니다(6절). 이것이 부정한 착복 때문이든, 성전 운영과 보수를 위한 예산을 알맞게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든, 제사장들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바꾸고 발전시키기보다는 기존의 질서 안에 머물려 합니다. 결국 개혁을 위해서는 그 일을 할 수 있을 사람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으로(7~8절)
여호야다를 비롯한 제사장들은 아달랴를 축출하고 바알 종교를 파괴하며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해 다윗 왕조를 재건한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23년이 흘러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고, 그 개혁의 주체는 바로 자신들이 세운 왕 요아스였습니다(7절). 다행히 제사장들은 왕 요아스의 책망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해 지금껏 자기들의 소관이었던 성전에 바쳐지는 헌물을 관리하며 성전을 보수하는 역할을 내려놓는 데 동의했습니다(8절). 이로써 남 유다에서도 개혁의 주체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왕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외부의 적, 아달랴를 치는 개혁은 감당했지만, 정작 내부의 태만을 막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자기가 세운 어린 왕에 의해 책망을 당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무엇인가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교회와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며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분들까지 사용하셔서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아니라 분노가 기반이 된 개혁 주체는 이후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부로부터의 개혁, 부단히 우리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 잡아가는 깨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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