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샀노라_룻기 4:7-12
- May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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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놓아 주신 은혜의 다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은혜의 다리가 어떻게 놓이는지를 보아스의 “내가 샀노라”는 선포를 통해 보여 줍니다.
신발을 벗어주다(7~8절)
당시 이스라엘에는 오늘날 같은 법적 서류나 공증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대신 독특한 관습이 있었는데,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거래를 할 때 자기 신발을 상대방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7절). 신발은 그 땅을 밟고 다스릴 권리를 상징합니다. 기업 무를 우선순위였던 무명의 사람은 자기 재산에 손해가 올까 봐 열 명의 장로 앞에서 신발을 벗어 보아스에게 줍니다(8절). 그는 자기 이름과 재산을 지키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성경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무명의 사람이 되어 사라집니다. 반면 보아스는 그 신발을 넘겨받음으로써 룻과 그 가문의 재산을 되찾을 법적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습니다.
내가 샀노라(9〜10절)
보아스는 타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룻과 그녀의 기업을 얻었습니다. 보아스가 “내가 샀노라”고 외친 이유는 명확합니다. 죽은 자의 이름이 그 가문의 기업 위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여 그 이름이 친족 중에서나 고향 성문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10절). 이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는 말씀의 원리를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이기심은 축복의 수도꼭지를 잠그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의 우선순위를 내려놓는 희생은 생명의 통로를 활짝 엽니다. 보아스의 이 선포는 훗날 갈보리 언덕에서 울려 퍼질 주님의 음성을 미리 들려줍니다. 우리가 죄의 빚에 팔려 이름도 없이 죽어 갈 때,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지불하시고 “다 이루었다”, 즉 ‘내가 대가를 다 지불했노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과거와 엘리멜렉 가문의 빚을 전부 떠안았듯, 주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당신의 것으로 떠안으셨습니다. 보아스의 이 선언으로 룻이 이방 여인에서 유력한 자의 아내가 된 것처럼 주님의 그 선언이 우리의 소속을 절망에서 소망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영광(11~12절)
이 위대한 결단에 성문 어귀의 모든 증인과 장로들이 축복으로 화답합니다. 그들은 이방 여인 룻이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기를 축복합니다(11절). 또 유다 가문의 대를 이었던 베레스의 집처럼 보아스의 가문이 번성하기를 기도합니다(12절).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보아스의 헌신을 통해 태어날 후손은 다윗왕을 넘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졌습니다(마 1:5-17). 보아스가 지불한 돈은 유한한 것이었으나, 그를 통해 흐르게 된 생명은 영원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순종의 신발을 신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광과 회복을 준비하십니다. 나의 작은 희생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기 재산을 지키려다 이름을 잃어버린 무명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대가를 지불하고 생명을 살려 영원한 이름에 참여한 보아스처럼 살 것인가? 기독교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시고 “내가 너를 피 값으로 샀노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신뢰하며, 우리 또한 누군가의 끊어진 소망을 이어 주는 ‘사명의 신발’을 신는 복된 삶을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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