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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_디모데후서 1:1-8

  • HKPC
  • Oct 31
  • 3 min read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고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던 장영희 교수는 계속 전이되는 암과의 싸움 가운데서도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기적이 아닌 날이 하루도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적처럼 하루가 시작되었다’라는 감사로 일어났고, 하루를 버텨 낸 저녁이면 ‘오늘도 기적처럼 살았다’라는 고백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수필집 제목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 고백을 잘 보여 줍니다. 이처럼 신앙인의 하루하루는 은혜의 기적입니다. 바울과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 역시 그러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속에서 복음의 사명자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도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1절)을 전하기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원리로 적용됩니다. 가정이든 사역이든 직장이든,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분의 뜻 가운데 불러 세우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며,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고 고백합니다(2〜3절). 이 표현에는 멘토 이상의 영적 아비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던 중에도 디모데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4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물과 기도 속에서 자라고 일어섭니다. 디모데가 귀하게 쓰임 받았던 것도 바울이라는 동역자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결코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이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임을 언급합니다(5절). 당시 유대의 관습상 아버지가 아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임이었기에 그 역할은 어머니와 외조모가 감당했습니다(행 16:1).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크리스천으로 사는 이유 역시, 바로 누군가가 기도와 눈물, 삶으로 전해 준 믿음의 유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라(6절)고 권면합니다. ‘불일듯 하다’라는 말은 은사를 더욱 신실하게 활용하고 열정과 헌신으로 부채질하여 활활 타오르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안에 있는 은사의 불꽃을 다시 힘 있게 살리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병약했고(딤전 5:23) 내성적이었습니다. 젊은 지도자로서 사역의 무게 앞에서 쉽게 위축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7절). 여기서 ‘두려움’은 복음 사역할 때 도덕적 용기와 책임에서 물러서려 하는 비겁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력(사명을 감당하는 힘), 사랑(공동체를 세우는 마음), 절제(자기 통제의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8절). 당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사도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은 더 큰 수치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수치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를 향한 이 권면은 곧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유산과 누군가의 기도와 사랑 속에 자라났고 하나님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은혜가 ‘기억’으로만 머물러선 안 됩니다. 다시 불일듯 하게 하고 두려움을 넘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결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은혜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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