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굳게 지킬지라도_마태복음 27: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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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딸 막달레나를 얻었습니다. 막달레나는 그의 삶의 기쁨이자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딸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급격히 쇠약해졌고, 안타깝게도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터는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딸의 장례 예배에서 그는 부활의 소망을 붙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야, 너는 다시 일어날 거야. 별들처럼, 태양처럼 빛나게 될 거야.” 루터에게 무덤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축복의 자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무겁고 차가웠던 무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세상이 무덤을 아무리 굳게 지킬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은 그 모든 봉인을 뚫고 나와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두려움을 이긴 사랑의 헌신(57〜60절)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은 평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제자였으나 공회원이라는 지위 때문에 그동안 공개적으로 제자임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하는 담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의 시신은 종종 방치되거나 짐승의 먹이가 되곤 했습니다. 요셉의 헌신으로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영광스럽게 안치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연약함 때문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드러내지 못한 순간을 경험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어 주님 편에 서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또한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신 사건은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 53:9)라는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준비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진리를 가두려는 세상의 헛된 수고(61~66절)
예수님을 죽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를 찾아가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63~64절). 시신을 도난당하면 백성 사이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이 돌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빌라도의 승인하에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고 로마 군병들을 배치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조치는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확실히 죽으셨고, 무덤이 정확히 봉인되었으며, 외부 조작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역사적 장치가 됩니다. 또한 무덤의 위치를 분명히 확인했던 여인들은,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의 방해와 여인들의 충성을 모두 사용하셔서 부활의 진실성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인간이 조치한 봉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두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세상의 방해와 공격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찬란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복음의 능력을 무덤 속에 가두려 합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돌로, 물질주의라는 돌로, 조롱과 박해라는 돌로 복음을 가두고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질병의 무덤, 가난의 무덤, 관계 단절의 무덤이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고, 세상은 “이제 끝났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루터가 딸을 묻으며 붙들었던 그 고백처럼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굳게 닫힌 무덤 문은 곧 부활이 시작되는 생명의 문이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닫힌 문 앞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주님의 능력을 무덤에 가두려 할지라도 주님의 능력이 훨씬 큽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그분이 반드시 여러분의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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