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도할 뿐이라_시편 10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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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오늘 본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저주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은 그 분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4절)는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대적이 아무리 거세어도 믿음의 사람이 달려가는 자리는 오직 기도의 자리입니다. 이제 그 기도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1~5절).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찬양의 근거라는 고백입니다. 주목할 것은 다윗이 원수로부터 구원받은 후가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서 이 고백을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거짓된 입이 열려 있고(2절) 까닭 없는 미움이 사방을 에워싸며(3절) 내가 베푼 사랑을 대적으로 갚는 배신의 상처가 선명한 상황입니다(4~5절). 바로 그 자리에서 다윗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4절)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간구합니다. “잠잠하지 마옵소서”(1절). 원수의 소리는 요란한데 하나님은 오히려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다윗은 그 침묵 앞에서도 하나님께 말을 걸었습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리에서도 믿음의 눈을 열어 여전히 찬양의 근거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6~15절).
적들의 위협과 공격 속에서 다윗은 딱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히브리어 본문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직역하면 “나, 기도”입니다. 삶이 기도 자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작 6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대적이 빨리 죽고, 그의 자녀들은 고아가 되며,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기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해석은 이 부분을 다윗 자신의 기도로 보되, 의로운 분노와 수사학적 과장을 감안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본받을 모델이 아니라 가르침을 위해 기록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다윗이 배신의 상처와 억울함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하나님 앞에 쏟아냈다는 사실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런 기도를 받으시기에 충분히 크신 분임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지금 입 밖에 내기 부끄러운 감정이 있을지라도 숨기지 말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쏟아 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이해하시고 위로하시며 원수로부터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불의의 뿌리(16절).
16절에서 다윗은 그 모든 저주의 이유를 밝힙니다.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16절). 여기서 ‘인자’는 헤쎄드로, 이는 언약에 기반한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실천하고, 지속하는 것입니다. 16절은 악인이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헤쎄드를 잊어버린 사람은 결국 가난한 자, 궁핍한 자, 마음이 상한 자를 짓밟게 됩니다. 반대로 헤쎄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연약한 그들에게 사랑의 손을 내밉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는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적을 향한 복수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연약한 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기도와 찬양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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