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약속은 이루어진다_마태복음 1:1-17
- HKPC
- Jan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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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660년, 영국 베드포드의 작은 감옥 안에서 존 번연(John Bunyan)은 펜을 쥐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절망과 외로움 속에 살던 그는 자신의 처지가 하나님의 약속과는 너무 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쇠창살이 그의 몸을 가두긴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천로역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실패와 고난의 자리를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는 현장으로 바꾸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곡가 존 뉴턴은 번연의 생애 중 어려웠던 이 시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능한 설교자의 입이 닫히게 되자 하나님은 더 큰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 만약 존 번연이 감옥에 갇히지 않고 베드포드에 남아 설교하며 다녔다면 그가 실제로 했던 선한 일의 절반도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은 바로 그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계보야말로 복음이 시작되는 가장 강력한 서론입니다. 그 안에는 “약속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하는 구속사의 드라마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수백 년의 세월과 인간의 수많은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어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계보는 단순한 혈통의 연결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과 이방인, 실패한 인간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시는 역전의 드라마를 보여 줍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고,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솔로몬은 수많은 이방 아내로 인해 우상을 섬겼고, 므낫세는 유다의 가장 악한 왕 중 하나였습니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는 출신이나 행적에서 자랑스러운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깨어지고 연약한 그 인물들을 통해 구속사의 계보를 이어 가셨습니다. 이 족보는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계보에 중요한 역설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의 후손 여고냐(여호야긴)의 이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죄악으로 인해 ‘그 자손 중에는 다윗의 왕좌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렘 22:30).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의 왕조는 무너졌고, 왕좌의 계승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길을 내셨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위 계승의 합법적 권리를 가졌지만, 예수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16절은 이 독특한 전환점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다른 인물의 경우에는 ‘낳았다’라는 단어가 쓰였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나시니라’가 사용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 분임을 명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다윗의 법적 후손으로서 왕권을 가지면서도, 여고냐의 저주가 닿지 않는 새로운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계보는 예수님이 율법적, 인간적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초자연적 방식으로 메시아 왕권의 약속을 성취하셨음을 증언합니다. 인간의 실패로 끊어진 줄 알았던 언약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시 이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저주를 돌파하고, 불가능을 넘어섭니다.
사사 삼갈은 불분명한 출신이었지만 하나님께 붙잡히자, 소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붙잡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붙잡혀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지 않고, 그분의 신실함에 달려 있습니다. 고난은 약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수입니다. 우리 삶이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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